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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서울의 봄

    안녕하세요 영화 서울의 봄 에 대해 포스팅 하겠습니다.

     

     

    서울의 봄 정보

     

    영화서울의 봄은 2023년에 개봉한 작품으로, 1979년부터 1980년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정치 스릴러 영화입니다.

    1312만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한국 영화 역대 흥행 순위 6위에 오르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넷플리스에서 스트리밍을 시작했습니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인 10.26 사태(박정희 대통령 암살)와 그로 이어진 서울의 봄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는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를 극적으로 재구성해, 당시의 정치적 혼란과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줄거리 요약: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사건으로 혼란스러워진 대한민국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최규하가 10대 대통령이 되며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불안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전두광이 하나회의 힘을 이용해 합동수사본부장 자리를 꿰찹니다.

    원래 그 자리를 이태신에게 주려던 계엄사령관 정상호는 전두광을 견제하기 위해 이태신을 수도경비사령관 자리에 앉힙니다.

    다음 인사 때 하나회 핵심 멤버들을 지방으로 발령시키는 모습에 분노한 전두광은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하나회 멤버들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전두광은 대통령 암살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계엄사령관 정상호를 체포한 뒤 군사 반란을 일으켜 대한민국을 손에 넣을 생각이였고 그를 위해 이태신을 다른 자리로 빼돌립니다. 뒤늦게 계획을 알아차린 이태신은 반란을 막기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모두가 알듯이 결말이 정해져 있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이 모든 사건이 이후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반영하며 끝맺습니다. 권력의 암투 속에서 희생된 인물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그려집니다. 영화는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생생하게 재현하며, 관객들에게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게 하고,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고뇌와 갈등을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서울의 봄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어두운 순간들을 조명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새기게 합니다. 권력의 무상함과 민중의 힘을 강조하며, 역사적 교훈을 전하는 동시에, 당시의 정치적 복잡성을 이해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실제인물 정보

    이태신의 모티브가 된 사람은 장태완 장군으로 6.25 전쟁이 터지자 군대에 지원하여 육군종합학교 11기로 임관했습니다. 열심히 군생활을 한 덕분에 71년 원스타 준장으로 진급하여 육군본부 군사연구실장과 제5군단 참모장을 역임했습니다.그리고 1979년 11월 16일 수도경비사령관이 되었는데 부임한지 24일만에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영화에서처럼 반란 작전을 가장 방해할 것 같은 세 사람-김진기 육군헌병감,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함께 사건당일 고급술집으로 초대했는데 정승화(영화에서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이 불법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며 급히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군대는 신군부에 넘어가 있었고 자기 휘하에 잇는 100여명의 병력으로 보안사를 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영화와는 달리 병사들이 다 죽을 수도 있다는 장교들의 설득과 국방장관의 투항하라는 지시 등 여러 이유로 자신의 부하이자 배신자인 신윤희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이후 45일간 모진 고초를 겪고 반강제로 예편하여 군생활을 그만두었습니다.

    전두환 시절 한국증권전산 사장으로 임명되었는데 이는 하나뿐인 딸을 살리기 위한 행동이였습니다. 1212사건 당시 체포된 걸 아신 아버지께서 충격으로 사망하시고 서울대를 수석입학할 정도로 똑똑했던 아들은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되어 남은 딸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일한 것입니다. 그리고 2000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4년간 정치생활을 한 후 2010년에 돌아가셨습니다.

     

    하나회 정보

    하나회는 대한민국 군부 내에서 결성된 비공식 사조직으로, 1960년대 후반에 창설되었습니다. 주로 육군사관학교 11기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었으며, 주요 목표는 군 내부에서 권력을 유지하고 증대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회는 군부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전두환과 노태우를 포함한 많은 고위 군 장성들이 이 조직에 속해 있었습니다. 하나회의 영향력은 1980년대에 절정에 달했지만, 19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몰락하게 됩니다. 그 결말은 김영삼 대통령의 군부 개혁 정책과 함께 찾아왔습니다.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취임 후, 하나회를 비롯한 군부 내 사조직의 해체를 주요 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는 군의 정치적 중립을 확립하고, 군 내부의 비민주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김영삼 대통령은 하나회와 관련된 군 인사들을 대거 숙청했습니다.

    1993년 3월, 김영삼 대통령은 하나회와 관련된 장성들을 예편시키고, 하나회의 주요 인물들을 군에서 퇴출시키면서 사실상 하나회를 해체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회는 군부 내에서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고, 사조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1995년, 전두환과 노태우가 12.12 군사 반란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과 관련된 혐의로 구속되면서, 하나회와 관련된 비리와 권력 남용이 추가로 드러났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회와 관련된 인사들에 대한 사법 처리와 군사 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회는 한국 현대사에서 군부의 정치적 개입과 권력 장악의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됩니다. 특히 1980년대의 군사 정권을 이끌었던 주요 인물들이 하나회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 조직은 군사 정권의 수립과 유지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회는 민주화 이후 권력 남용의 상징으로 평가되며, 한국 군대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부정적인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결국, 하나회는 1990년대 군부 개혁을 통해 해체되었고, 이후 한국 군부 내에서 사조직의 영향력은 급격히 약화되었습니다. 이로써 하나회의 결말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함께 찾아온 군부 개혁의 결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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